세상사는 이야기

잘난 사람과 괜찮은 사람

안젤라-정원 2007. 8. 2. 01:30

- 잘난 사람과 괜찮은 사람 -

 

 

이맘쯤의 나이를 먹다보니 정말 잘난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잘난 사람이란 어떤 상황, 어떤 의미에서든 나보다 무엇이든지

 

한 가지라도 나은 사람이라는 판단 하에 말하는 것임을 오해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괜찮은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음을 느낀다.

 

돈과 명예, 권세, 직업, 학식이나 학벌 여부의 중요성을 떠나서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격 등을 놓고 따지고 볼 때, 진정한 호인을 알아가기란  또한 쉽지 않다.

 

사람은 애시 당초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불완전한 인격 자체로 만들어진


신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에 기인해 볼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갖는다면


삶이 즐겁고 행복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을 키우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주위에서 모든 관심이 성적에 대한 우수함과


모자람을 비교하며 사람을 판단하는 우려가 있음을 많이 보게 된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는 그런 부모와 직결되고, 끼리끼리


몰려다니게 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강남엄마 따라잡기’ 드라마의 한 단면을 엿봐도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교육에 대한 지나친 관심도와 함께 불합리한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는지 심각하게 우려할 수준에 놓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 더 이상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분도 간혹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한번쯤은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경우에 따라서 아래와 같은 비슷한 경험을 해봤으리라 본다.

 

 

 

아이의 성적 여부에 따라 부모는 자식의 기분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아이의 성적이 좋으면 부모는 덩달아 기분이 좋고, 남들 앞에 자신감 있는


태도를 갖게 된다. 자식을 남들이 알아주는 우수한 대학에 보낸 부모는


잘난 부모가 되고, 그렇지 못한 대학에 보낸 경우나 성적이 부족한


아이의 부모는 기가 죽게 마련이다. 심지어 부모들이 사는 형편에 따라서도


아이들이 어울리는 성향이 다르게 좌우된다 한다.

 

 

 

나는 자랄 때, 친정아버지가 이따금씩 해주시는 말씀을 아직도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


아버지는 과묵하시고 진지하신 분이셨는데, 항상


‘ 나보다 어느 한 가지라도 본받을 점이 있는 사람은 모두 내게의 스승’ 이라고 하셨다.


그 사람에게서 본받고 배울만한 것을 내게 받아 들여 좋은 점만을 취하라고


평소에 늘 강조하셨다. 그러면서 '눈빛이 총명한 사람/ 무언가 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


을 친구로 두라고 말씀해주시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거울을 보며 내 눈을 바라보곤 했었다. 자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타고나기를 선천적으로 눈이 작아 보이는 열등감을 가졌었기에...


아마도 눈빛조차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총명한 지혜로움을 나 자신이 갖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 자신 스스로가 그렇게 보여야만 그런 비슷한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살다보니 정말 나보다 잘난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거의 발에 밟히고, 채 일 정도로 수 없이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많았지만,


괜찮은 사람을 꼽으라하면 그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난 사람에게서 나는 뭐든 한 가지라도 그 사람에게서 본받을 점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괜찮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자주 생기기를 바라기도 한다.


아울러 아이를 키우면서는 나도 친정아버님이 해주신 그 말씀 그대로


나보다 나은 어떠한 것, 한 가지라도 본받고 취하라고 일러준다.

 

 


사람에게서 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독서, 영화관람, 영상, 동물, 식물, 자연, 여행


등을 통해서 모든 것들을 두루두루 보고, 경험하고 알게 되면서 배우라고 일러둔다.

 

언젠가 괜찮은 남자와 여자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뿐만이 아닌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무수한 많은 것들을 표현 할 수 없는


지식의 얄팍함도 인정한다. 나 또한 잘난 사람보다는 괜찮은 사람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를 원한다.

 

 

 

정치적으로 늘 시시비비를 가리며 그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해대고 있는 주변 성향을 보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정말 정치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일에 대한 시작도 벌려놓고, 시도해보기도 전에 미리 초부터 쳐대고,


맥 빠지게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신중하게 상대방에 대한 자질이라든지 성품 등을


검증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물고 뜯는 일은 옳지 못하다. 또한 자기가 속한


정당이라고 해서, 또는 고향사람이라고 해서 지역이기주의를 빌미로 무조건


‘얼굴 밀어 넣기 식’ 이면 곤란하지 않는가?

 

 

 

원성스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음을 떠올린다.


"개인적으로 전 누군가 나쁜 일을 했다고 해서 꼭 그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사람들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단죄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업보로 받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전 어떤 사람의 과거사를 잣대로


미래까지 나쁘게 얘기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권력이 있든 없든, 가진 게 많든 적든, 죽을 땐 누구나 빈손으로 가는 법!


아홉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열을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늦기 전에 화장터에 한 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재미있는 것은 죽을 준비를 하면 더 열심히 살게 된다는 점이예요.


천 년만 년 살리라 생각하면 오히려 할 일이 없는데, 내일 당장 죽는다고


생각하면 해야 할 일이 참 많아요.’

 

 

 

세상을 살면서 참으로 공평한 것은 죽을 때만큼은 아무것도 가져갈 수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고 충분히 생각하고, 삶을 산다면 정치하는


사람들의 색깔들이 좀 달라질 것인가? 잘난 사람들 덕분에 국민들의 삶의 질에


풍성함을 안겨주는 날이 올는지를 기대해 봐도 되겠는지...

 

 

 

그간 우리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위한 정치가 우선이 되기보다는


늘 자신들의 잇속만을 차리기 위한 정치를 계속해왔었기에 이제는 국민의


신뢰도도 떨어지고, 정치라면 신물이 난다고 머리를 흔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번 탈레반 인질 사태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통한의 심정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 또한 크다는 것에 토를 달지 못하리라. 


잘난 사람이면 잘난 사람답게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크게 일을 좀 해보던가? ㅠㅠ

 


(2007. 8. 2. 목)

 

(글쓴이: 인샬라- 신의 뜻대로, 정원-필명, 실명: 金英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