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맙습니다. 대모님! -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예기치 않은 인연으로 인해 속을 끓이게 되거나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사람으로부터의 후한 인심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내게는 신앙적으로 나를 이끌어주는데 도움을 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늘 우리가정과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는 고마운 대모님이 계신다.
몇 해 전, 내가 가정적으로 매우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던 시기에 대모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전엔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 오면서부터 알고 있었기에
입주민으로서의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 아줌마에 불과했다.
누구나 대부분 그러하듯이 나 또한 반상회에서 얼굴을 마주쳐서 알게 되었고,
간간이 엘리베이터나 길에서 만나면 간단한 눈인사만 나눌 정도의 평범한
이웃으로서만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대모님은 내게 ‘ 성당을 같이 다녀보지 않겠느냐?' 고
권유해왔고, 나는 때마침 혼자서라도 성당을 다녀보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았던 때라 그리 큰 망설임 없이 따라 나서게 되었다.
당시, 대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오랫동안 나를 눈여겨봤는데,
내가 마치 자신의 딸처럼 여겨져서 신앙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분과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성당에서 영세를 받으면서
나의 영적인 대모님이 되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부터 친정엄마의 인도로 교회를 다녔던 나는
사춘기 이후부터 찾아 온 종교적 갈등과 회의로 인해 교회 생활에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다만 노래를 좋아하는 탓에 성가대 활동만 하고,
결혼 전까지 조용히 신앙생활을 해왔다. 주일 낮, 밤 예배를 비롯해서
수요예배, 금요일 철야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다니는 친정엄마의 무조건적이고도 광적인 신앙생활에
못마땅하고 불만이 많았던 터라 나는 교회를 다니기는 했어도
늘 회의적이었고,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식의 날라리 신자에 불과했다.
그나마 결혼 후에는 남편의 반대와 시어머님의 반대에 부딪쳐 교회에는
아예 발을 붙이지도 못하고 살아왔다. 돈독한 불교 신자였던 시어머님은
내게 매번 큰며느리임을 누누이 강조하셨고, 종교 또한 시댁의 가풍을
따라야 한다는 논리로 나를 긴장시켰다. 여러 차례 갈등을 겪고 나서야
나는 교회도 절도 아닌, 남편의 무교를 따르기로 마음먹었고, 아무 곳에도
적을 두지 않고, 아무 곳에도 나가지 않고, 신앙을 갖지 않은 채, 살아왔다.
그러던 중, 추석을 지내고 일주일 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동생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수시로 내게 우울증이 찾아와 힘들어진 상황에서 남편까지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당시엔 남편이 증권회사에 다니던 시동생과
합동으로 증권에 투자하여 거액의 돈을 날린 후, 경제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찾아오던 시기여서 어디에든 답답하고 심란했던 얘기들을 마음껏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성격이 활달한 편이 아닌 나는 사람들과의 사귐이나 어울림이 잦지 못했고,
이전에 다니던 교회는 다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시어머님이
믿고 있는 불교를 며느리라고 해서 억지로 따라가고 싶지는 않았고,
종교로서의 절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다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마음의
평온함을 느끼고 싶어 하던 찰나에 성당으로 인도를 받게 된 것이었다.
성당은 교회와는 달리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와 차례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과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 식품에도 그다지 금하고 있지 않음에 이끌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성당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미사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교회와는 달리 성당은 차분하고 정적인 이미지가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내 모습과도 많이 닮은 듯해서 나중에라도 신앙을 갖게 되면
성당을 다니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없어
성당을 나가지 못했던 터라 대모님의 인도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성당은 내가 생각했던 많은 부분들과 어긋났고,
헌금으로 인한 말하기 껄끄러운 문제도 있었고, 고해성사 같은 경우는
적지 않은 마음의 큰 부담으로 이어져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냉담으로 들어선지 벌써 5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듯하다.
대모님은 교리공부 시부터 매우 회의적이었던 나를 끝까지 놓지 않고,
이끌어주셔서 영세까지 받게 했는데, 얼마 다니지 않아 그만 두게 된
나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다.
한때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며칠째 밥을 못 먹고 있을 때, 대모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다가 ‘ 아프다’ 는 소리에 얼른 집에 가셔서 손수 만든
도토리묵과 말린 감잎을 가져 오셨다. 지난 가을 산에 가서 직접 딴 도토리로
묵을 만들고, 감잎을 말려 가져온 것이다. 무를 흑설탕과 졸여서 먹어보라는
말과 함께 감잎을 끓여서 차처럼 그 물을 수시로 복용하면 감기가 떨어진다고
하면서 친엄마 같은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무척 고마워했던 적이 있었다.
이후에도 북어 국과 잣죽을 손수 끓여와 내게 감동을 안겨준 분이기도 했다.
< 이전에 성당의 자매님으로부터 받은 식사 전, 후 기도문 상-
대모님이 선물해 주신 묵주/ 식사할 때의 기도는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다.>
영세를 받던 날은 꽃다발과 함께 묵주와 성경책을 선물해주셨다.
내가 성당을 나가지 않고, 냉담 중일 때에도 가끔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챙겨주고, 농사지은 거라면서 도토리묵과 감을 한 아름 주거나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주면서 세심하게 챙겨주고 친절을 베푸시던 분이다.
그분이 오랜만에 인터폰으로 전화가 왔다. 자신의 집에서 성당의 반모임이
있는데 오늘은 한번만이라도 참석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며칠 있으면 이사를 간다면서... 뜻밖의 소식에 나는 무척이나 섭섭해서
금방 울먹이며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동안 이웃에 살면서 친엄마 같은
살가운 정을 나눠주신 분이었기에 이사 소식은 내게 충격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대모님 집으로 달려갔다.
반모임이 끝나자 대모님이 성지로 피정 (뜻: 가톨릭-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을
갔다가 내게 어울릴만한 것을 고르느라 애 먹었다면서 ‘ 옥팔찌’
하나를 내밀었다.
< 예쁜 상자에 담긴 옥팔찌- 선물이란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다. >
하얀색의 옥팔찌는 맑고, 투명해서 깨끗함을 상징하듯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비록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성당을 나가지 못하는 형편이겠지만,
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좀더 여유롭다면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잊지 말고 밝게 생활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함께 나눠주셨다.
< 선물받은 옥팔지- 색상이 희고 고와 맑게 빛나는 모습이다.-
신부님의 기도까지 마친 거라한다. >
고맙습니다. 대모님! 이런 귀한 선물을 주시다니...
어렵고 힘들 때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신앙이 부족해서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조차 잘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제게 주신 이 귀한
선물로 힘든 순간을 위기로 극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힘을 내어
열심히 살아갈게요.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2007. 9. 14. 금 )
- 글쓴이: 인샬라- 정원/ 실명: 김영순/ 세례명: 안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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