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주부들

안젤라-정원 2007. 9. 4. 06:43

-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주부들 -


아파트에 살다보니 재활용품 분류수거 일이 따로 정해져 있다.

이전엔 화요일에 재활용품을 수거해갔으나 최근엔 월요일로 바뀌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수거해간다는 원칙이 정해졌으니 최소한 월요일 오전까지는

재활용품을 분류해서 아파트 화단 앞에 놓여진 장소까지 내다놔야 한다.


사람 사는 곳엔 다양한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별별 것이 다 쏟아져 나온다.

일주일 분량의 물품들을 정리하다보면 어떨 땐 안 먹고, 안 쓰고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일일이 정리해서 쓰레기를 버리는 것과

재활용 할 물건들을 구분하여 분류수거함에 넣는 것도 주부의 몫이다.


오늘 나는 일주일 분량의 재활용품을 정리해서 분류수거함에 넣다가

아주 예쁘게 생긴 유리접시 하나를 발견했다. 칸막이가 되어 있어

손님 접대용으로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새 접시가 버려져 있어

깜짝 놀랐다. 처음엔 유리로 되어 있으니 어딘가 흠이 있어 버렸겠지 싶었다.

이리 저리 돌려보고,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금 간 곳 하나 없이 새것처럼

멀쩡한 그릇이었다. 이런 멀쩡한 그릇을 왜 버렸을까?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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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접시- 식탁 위에 놓고, 아무리 이리 저리 살펴봐도 흠 하나 없이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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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바닥에 놓고, 다시 한번 살펴봐도 깨진 곳 하나 없이 아주 양호 한 상태의 접시 >


얼마 전엔 밤중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이웃 주부 둘이서 3단짜리

옆으로 길게 누운 책장을 힘겹게 엘리베이터로 옮기는 모습을 보았다.

밤중에 책장을 싣고 와서 대형할인마트에서 급히 사가지고 오는 줄 알았다.

책장이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여서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 나도 구입할 의사가 있어 어디서 얼마주고

샀느냐며 물어보았다.

“ 얼마 주셨어요?"

주부 둘이 내 질문에 너무나 기가 찬 듯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막 웃었다.

“ 새 것으로 보이세요?"

" 네.”

“ 이거 저기서 주워오는 길이예요.”

' 세상에나!!!'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금방 사온 물건처럼 매우 유용하게 쓸만한 책꽂이였다.

책꽂이 겉 표면의 색깔도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원목 느낌의 튼튼한

책장이었다. 이웃 주부는 나보고 얼른 옆 동의 재활용품을 수거해 가는

화단 앞을 가보라고 했다. 자기네들이 가져가는 책장보다 작은 사이즈이긴

하지만, 두 개나 더 버려져 있으니 확인해보고 쓸만하면 갖다 쓰라고 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 설마! 새 것을 버렸을라고.. ’

그래도 혹시 몰라 가서 확인을 해보고 싶었으나 남편이 남이 쓰던 물건을

가져오는 것을 싫어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옆 동의 화단 앞을 가보니 어제 주부가 말했던 그 장소에

그대로 책장 두 개가 버려져있었다. 그런 책장을 버리려고 하면 돈을 주고

버려야 한다. 가구나 소파, 의자 등 덩치가 큰 물건들은 경비실 아저씨들의

확인을 거쳐 최종적으로 버리겠다는 의사가 적힌 딱지를 사서 붙여야만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곳에서 가져가는 것이다. 버려진 책장 두 개를 확인해보니

하나는 뒤판이 뒤틀려서 사용하기 어려웠고 (고치면 사용은 할 수 있겠더라)

나머지 한 개는 새것처럼 멀쩡한 3단짜리 공간박스 형식으로 나온 책꽂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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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물건을 유용하게 사용하게 된 오른 편 책꽂이 - 책을 여러권

꽂을 수 있어 좋다. 왼편의 책상서랍- 문고리가 고장났지만 아직

쓸모가 있어 버리지 않고, 사용하고 있음- 만 15년 된 책상 임. >


나는 마침, 작은 책꽂이라도 사서 집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책을 정리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 중이었기에 책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역시나 새것처럼 멀쩡했다. 이리저리 잴 것조차 없이 나는 책장을 집으로

옮겨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도 책장을 보더니 새것인데 왜 버렸는지

모르겠다면서 어이가 없어했다. 아마도 세트로 구입한 책장 중에 하나가

고장 나니까 구색이 안 맞아서 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것 같은데...

요즘 주부들은 새것만을 좋아해서인지 고장 나면 고쳐 쓸 생각보다는

쓰던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고 새 물건을 구입하는 추세인가 보다.


어찌 보면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결혼 20여년이 지나도록 신혼 때 쓰던

가구를 비롯해서 냉장고, TV, 세탁기, 비디오, 전자렌지 등 만 15년이 넘는

가전제품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고장 나면 고쳐 쓰고 하니 큰 불편함 없이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엔 주방 가스렌지를 교체했다. 검침원이 나와서

가스렌지가 너무 오래돼서 폭발의 가능성이 있으니 되도록이면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해서 바꾸게 된 것이다. 거실에 있는 컴퓨터까지( 수차례 고쳐

쓰다가 결국엔 고장이 나서 아예 불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만 10년이 된 걸

최근까지도 사용하고 있었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참으로 구질구질하게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남들은 새 집으로 이사 가면 가구를 비롯해서 모든 걸 다 새것으로

바꾸어 채워놓는다고 하는데... 나는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이사 와서도 이전처럼 해놓고 사는 것을 당연시하고 살아왔다.

오죽해서 아이가 친구 집을 다녀오면 우리 집만 구닥다리 물건들을

사용하고 있어서 창피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그런 말에

개의치 않고 살아왔다. 알뜰하다고 말하긴 어려워도 나는 사치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기에 그런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리 잘 살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멀쩡하게 버려지는 물건들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히다.

아무리 내 돈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 일이라지만,

건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


이사가 잦은 계절이면 아파트 앞 쓰레기 분류함에는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이

나뒹굴기 일쑤다. 버려진 물건들을 보노라면 어떨 땐,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멀쩡한 물건들을 마구 버리기 때문이다. 오래된 가구이긴 하지만, 흠 하나 없이

깔끔한 장롱, 책장, 문갑, 거실장을 비롯해서 책이며, 식탁, 의자, 소파,

컴퓨터 책상, 심지어 부엌가구까지 다 천덕꾸러기 마냥 버려지고 있다.

TV는 물론, 세탁기, 냉장고, 아이들 가방까지 새 물건들이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는 특히 더 쓸만한 물건들이 더 많이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옷 수거 분류함에 가보면 더 가관이다. 언젠가 TV에서 버려진 옷들을

수거해가서 공장에서 계절별로 옷을 분류해 외국으로 수출하는 장면을

시청한 일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옷 한 벌에 100원, 200원,

또는 비싼 옷도 2천원이면 구입할 수 있어 저렴하게 옷가지를 여러 벌 챙겨서

사용한다고 한다. 버려진 옷들 중에 명품 옷을 비롯해서 새것처럼 멀쩡한

옷가지들이 너무나 많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예전과는 다르게 먹을거리를 비롯해서 입을 것, 모든 물건들이

풍족하게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하루 한 끼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기아로 시달리는 국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부모들의 이혼으로 또는 가정형편이 안 좋아 학교 급식비를 내지 못해

나라로부터 급식을 지원받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멀쩡하게 새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이리

함부로 내다 버려도 되는 건지 묻고 싶다.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2007. 9. 4. 화)


- 글쓴이 : 인샬라- 정원/ 실명- 김영순 -

 

* 이 글이 2007. 9. 6. 자로 다음(daum) 메인 화면의 UCC투데이로

글이 올려져 있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의 댓글이 증가해서 알아보니

다음 메인 화면에 글이 떠서 그랬나 보네요.  간혹 시비성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이 계신데, 차근히 글을 살펴보시고, 비방성 댓글은

삼가해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남겨주시고,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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