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전자경비 시스템과 경비 아저씨-
금융기관의 현금 인출기 자동화 시스템이 점차 발전하여 최근엔
예금은 물론 아파트 관리비를 비롯하여 공과금까지도 창구직원의
손을 거치지 않고, 기계가 일을 대신해주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금융기관 뿐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제는 모든 시설에 있어
자동화시스템 장치가 되어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얼마 전부터 전자경비 시스템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관리실에서 지급해 준 보안키(또는 카드)로
현관자동문 로비콘 글자판 밑에 있는 카드 접근 표시 부분에 보안키를
접근시키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시스템입니다. 사람은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차들은 아파트 입구 쪽에 있는 차량관제소를 통과해야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입주민의 내부 차량은 차량인식 카드가 있어
자동으로 차량바가 열리고, 방문차는 방문차량으로 구분되어
통제실 직원의 통제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아파트 전자 경비 시스템' 은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자동으로
대신 해주는 일이니 편리한 점도 있겠으나 왠지 모르게 점점
인정이 메말라가는 듯한 삭막함도 느껴지곤 합니다.
식구별로 외출 시는 물론, 집에 있다가 잠깐 슈퍼라도 다녀올라치면
언제든 보안키를 지참하고 나서야 되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손님이 방문 侍에는 현관자동문 앞에서부터 문이 굳게 닫힌 채,
거절을 당할 수도 있고, 방문시마다 매번 세대로 통화를 하고,
세대원의 ‘문 열림’ 허락을 받아야만 현관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경비 시스템이 불편한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동안 각동, 호수별로 경비 일을 담당하던 경비 아저씨들의
인원이 절반 이상으로 감축되면서 아파트 관리비 절감 차원에서도
입주민들은 혜택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아파트별로 자주 드나드는 잡상인들의 출입도 통제 할 수 있으니
입주민들은 보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밤낮으로 경비 아저씨들이 지키던 눈(眼)들은 여기저기에 설치 된
CCTV 가 우뚝 선 모습으로 사람 대신 도둑이나 그 외의 위험 상황을
보고하고 지켜주겠지요.
입주민이야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하더라도 전자경비 시스템 설치로 인해
고급 아파트라는 이미지와 함께 아파트 관리비 절감까지 가져다주는
효과에 그리 큰 불평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반기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경비 아저씨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안타깝습니다. 경비직 일은 대부분 연세가 드신 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종 중 하나 입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일을 함으로써 경제적 도움은 물론, 삶의 보람을 느끼고 일에 대한
의미도 느낄 수 있는 일이거늘...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취업하기
힘들다는 세상에 나이 드신 분들의 일자리가 그리 흔치는 않기에
더욱 애석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간 저희 아파트에서도 많은 경비 아저씨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 중에 기억나는 경비 아저씨 한 분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몇 해 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폐가 안 좋아졌다고 함) 경비 일을
그만두시긴 했지만, 그 분만큼 성심성의껏 주민들을 위해서
일을 잘 하신 분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얼마나 부지런하시고
일을 잘하시는지 그 분을 보면서 직업엔 정말 귀천이 없고,
늘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 분의 성함도 모르고, 다만 ' 우씨 아저씨' 라고만 불리던
그 경비 아저씨는 경비 일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입주민의
명단을 관리소에서 받아다가 42세대나 되는 세대원 전원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틀 후부터는 동, 호수와 세대원의
이름만 대면 거의 다 알정도로 세대원 모두에게 관심을 기울였지요.
해마다 일층 화단 앞에 분꽃, 과꽃, 봉숭아, 맨드라미, 칸나 등의
알록달록, 색색으로 꽃을 심어 활짝 피우게 했고, 아이들에게
산교육의 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린 꼬마와 엄마들에게는
봉숭아꽃으로 빨간 손톱 물 들이기를 권유하기도 했지요.
하루도 빠짐없이 빗자루를 들고 아파트 주변 청소를 하셨고,
분리수거, 쓰레기 줍기, 도로에 붙은 껌 등을 떼시곤 했습니다.
입주민이 출입할 적마다 예의바른 인사는 빼놓지 않으시고,
특히나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경비 아저씨 덕분에 저 또한 마음 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낸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합니다.
경비실에 앉아 계실 때에는 공부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는데,
신문이나 자투리 종이에다가 한자를 늘 그적거리시던 생각이 납니다.
'우씨 아저씨' 는 경비 일을 하시기 전에는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는
큰 회사의 오너(owner)이셨다 합니다. 하지만, IMF 시기에 부도를 맞아
쫓기는 신세가 되어 결국엔 용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경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지요.
이 후, 한동안 이 분의 부지런하시고 자상하고, 섬세하신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대형 할인마트 앞에서 어떤 분을 뒤따라
물건을 가득 안고, 택시 안까지 실어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씨 아저씨는 몸이 더 마르고, 머리가 여기저기 희어 있었습니다.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모습으로 발견 된 걸 보면서 차마 아저씨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역시나! 아저씨는 아직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가시는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사시는지... 건강은 어떠신지... 궁금하지만...
자상하고, 성실하시고 부지런 하셨던 경비 아저씨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7. 4. 27. 금 )
(글쓴이: 인샬라- 정원/ 실명: 김영순)
*사진: 작년 겨울 눈 내리던 아파트 앞의 정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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