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속 프로그램을 시청하다보면
언어 파괴? 의 말들이 난무한다.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없어
한동안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화면속의 연예인은 웃고 떠드는데도
나는 도무지 이해 할 수없어 애를 먹었다.
나이가 드니까 이해력이 떨어져서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 라떼는 말이야~~~'
아주 친절하게 자막 설명이 나오기도 한다.
그제야 뒤늦은 뇌회로가 작동한다.
그랬구나. ' 아! 나 때는 말이야~~'
이미 알고 났을땐 때가 늦었다.
지나간 시절의 얘기를 자꾸만 꺼낸다면
이미 나는, 당신은 꼰대가 되는 순간에
도착했다. 구시대의 옛날 사람이 되어
패배자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옛시절의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고,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고, 맺혀있고, 숨어있고, 박혀있어 튀어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리운 추억속에 아련함이 알알이 속속들이 서려있다.
나는 3남 1녀의 외동딸로 위로 오빠가 있고 남동생이 둘이 있지만 20여년전 내밑의
동생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남자 형제들 틈에서 자라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많이 거들며 자랐다.
엄마가 교회를 가거나 한달에 두세번씩
한증막으로 외출을 하는 날이면 집안일은
내차지였다. 아궁이에다 불을 때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세수와 양치물을 솥에다
가득 채워놓는 일을 담당해야 했다.
연탄불도 꺼지지 않게 잘 관리해야 했다.
어릴적부터 학교를 다니면서 집안일을 거들었으니 그 시절이 힘들고 싫을 법도 한데
산골로 이사를 오면서 오히려 옛시절이 자꾸만 생각나고 그리워지고 꿈에서도 살던 동네가 나타난다.
옛날과 달리 손빨래를 거의 하지 않고
세탁기가 대신 해주는 빨래를 마당에
널면서 파릇한 하늘과 푸르른 산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빨래에서 풍기는 인위적인 꽃향기가
자연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에 실려 상큼하게 지나간다. 가끔 코끝을 살짝
스치며 간지럽히기도 하는 지금의 일상이
행복하고 상쾌하게 느껴진다.
예전엔 마당 한켠에 빨래줄이 있었고
양쪽 기둥 사이로 고무줄을 매달아
혼자서 고무줄 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마당 한쪽엔 십여개의 돌 계단이 있었고,
그 위로 간장, 고추장을 담은 항아리들이
즐비한 장독대가 있었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비행기가 지나가는
저녁무렵이면 비행기의 여운에 이끌려
장독대를 자주 올라갔다. 해가 지는
노을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붉은 노을이 서서히 사라지는 하늘을 바라다보면 왠지 모를 서러움이 북받혀
혼자서 눈물 짓다 내려오곤 했다.
여자 형제없이 홀로 무료한 시간을
채워주던 옛날집이 그리워지는 것은
순전히 산골로 이사 온 덕분이다.
이곳은 예전에 내가 살았던 동네 산과
하늘. 주변 골목 등이 흡사하다.
당시엔 못사는 동네로도 소문이 나 있었지만 윗동네에 이모님댁이 살고 계셨고 동갑내기 이종사촌 친구인 영미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기와 지붕에 담벼락은 벽돌로 지은
구옥이지만 재래식 화장실이 싫고
밤이면 무서웠다. 허리를 숙여 밥을 짓는
불편함을 벗어나 조리대가 있는
입식 주방으로 이사하기를 바랐다.
아궁이 없는, 그을음과 연기없는 부엌에서
밥을 하고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품위있는 밥상을 원했다.
결혼후 대부분의 시간을 아파트에서만
거주했던 나는 예전에 원했던 집에 대한
로망은 어느정도 이루고 살았던 것 같다.
꿈꾸며 잘 살아가던 내 집이 어느날 맥없이 사라지고, 남의 집에 세를 전전하며
힘겹게 세상살이를 하던 무렵.
지금의 집을 만나게 된 것이다.
며칠 사이로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빛이
날 정도로 맑고 푸르르다.
하늘 아래 산너머 나무를 이룬 숲은
우거진 수풀더미를 숨긴듯 울창하다.
이름모를 나무들이 흐드러지게 가지를
흔들며 우뚝 서 있는 5월의 계절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마당 한구석 색색깔의 꽃을 머금은
꽃망울은 잠시 머물더니 어느사이
활짝 폈다가 일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이 모든것이 자연속에 살고 있는 집 덕분이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뜨끈한
구들장이 있는 집을 간절히 원했던 남편.
비록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원없이
산을 가고 나물을 캐고, 밭농사를
지을수 있는 이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고장에 정착하게 된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 삼아 말하기도 한다.
나이가 많아 자꾸만 옛날 얘기를 한다고
꼰대 취급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
' 나 때는 말이야' 라는 말이
' 라떼는 말이야' 로 변이 된 지금의 언어를
못 알아 들어도 괜찮다.
다만, 권위적이지 않고 꽉 막힌 사고방식을
고집하지 않는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 위의 사진을 옆으로 하나씩 밀어 주세요.
(2021. 5. 15. 토)-글: 안젤라-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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