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산골일기-슬픈 이야기★

안젤라-정원 2021. 6. 13. 21:01


★산골일기-슬픈 이야기★

1. 오늘 내 카카오스토리에 친구로 등록 된 생일 축하자의 소개가 떴다. 그녀의 행복했던 추억이 남은 프로필 사진이 뜬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하다. 그녀는 작년 이맘쯤 세상을 떠났다. 직장동료로 만났던 그녀는 건강한 체구에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가끔 숨이 차고 힘들어 하는 모습은 보았으나 휴무일 때는 봉사로 시간을 보내는 둥 바쁘게 살아 그렇게 아프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어느날 그녀가 계단을 오르지도 못할 만큼 무릎과 대퇴부쪽 관절에 이상이 생겨 대학병원에서 상세한 검진을 받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후로 그녀는 갑자기 퇴직 의사를 알렸다. 퇴직 전 몇 달 사이로 그녀의 체중이 급격히 늘자 주위에서는 조금씩 걱정하는 말을 전했다. 그녀는 늘상 있는 일로 '다이어트의 고충' 만을 토로 할 뿐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은 듯 했다.

근무하다 시간이 나면 가방에서 약을 꺼내 먹는 모습을 목격했다. 병원에서 임시로 지어 온 소염 진통제로 버티고 있었나 보다.
어느날 갑자기 걷지 못할 통증으로 퇴직을 한 그녀는 골수암이라는 청천병력의 진단을 받았다. 집에서 약 2년 정도를 투병하다 그녀의 아들에게 부고 소식을 받았다.

아프다는 진단을 받기 며칠 전 내게 여행하기에 괜찮은 섬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다. 산책 삼아 걷기에 적당한 섬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하다 인천의 모도섬을 떠 올렸다. 마침 나는 모도섬을 다녀와서 찍은 사진과 글이 있었다. 스토리에 친구 공개로 소개 된 글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글을 보더니 색다른 모습에 반했다며 계속 내 글을 받고 싶어 했다. 친구 신청을 하고 퇴직 이후에도 내게 가끔 근황을 전해 왔다.

그런 그녀의 부고 소식에 한동안 마음이 아파 카카오톡에 뜬 그녀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한채 살아 왔다. 오늘 나는 그녀의 생일 소식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마음을 접고 내려 놓을 때라고 생각 되었다. 스토리 홈에 내 친구 등록란을 지우면서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2. 재작년 이맘쯤에 또 다른 그녀의 핸드폰으로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나이답지 않게 순수하고 착했던 그녀는 나와 한동네 아파트 건너편 동에 살았다. 근무가 맞는 날은 출퇴근을 함께 하며 친하게 지냈다. 집안 사정상 집과 직장을 옮기게 된 나는 어느날 전화 한통을 받았다. 새로 이사간 집 아파트 공원 바로 밑에 빌라로 자신도 이사를 왔다면서 나와의 인연을 신기해 했다.

먹을것을 챙겨주고 서로 나눠주며 친언니처럼 살갑게 지냈다. 노래는 잘 부르지 못했지만 노래교실에 나가 열심히 노래를 배우고 스트레스를 풀던 그녀.
오랜기간 남편의 실직으로 경제적으로 힘겨워 하던 그녀는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아쉬운 소리를 하였다. 내게도 몇차례 돈을 빌리기도 하였다. 적은 액수의 금액이었지만 나도 어려운형편이라 도움을 줄 수 없어 괴로웠다.

그 시기 나는 또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차츰 그녀와 멀어졌다. 지인들로부터 소식을 들었을 땐 그녀가 암과 싸우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들려왔다.
이사후 오랜만에 통화 한 그녀와 추어탕 집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녀는 방사선 치료로 빠진 머리를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살도 많이 빠지고 음식을 천천히 힘겹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순간 나는 몸에 전율이 일듯 공포감이 밀려왔다. 환자의 모습과 쏙 닮은 아는 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3. 아들과 힘겹게 씨름하며 초보 주부로 살았던 시기에 산책삼아 나갔던 동네 아파트 공터에서 그녀와 첫만남이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인으로 살았던 나는 직장을 그만둔 후 육아로 지친 하루를 우울하게 살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 본
나와 아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그녀의 아들도 우리 아이와 동갑의 나이였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직장을 다니다 둘째 아이 임신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주부로 살고 있지만 우울증으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언니는 중학교 선배였다. 병설 유치원 교사를 하다 퇴직했다고 한다. 남편은 고등학교 컴퓨터 선생님이었다. 첫만남에서 자신의 아파트를 보여주고 강화도에서 농사지은 양파. 감. 당근 등 작물을 나눠 주었다.

언니의 아들과 우리 아들과는 친구가 되었다. 언니와 동네 산을 가고 백화점도 가고 언니의 고향인 강화도로 밤을 따러 가기도 했다. 영화관람도 함께 보고 찜질방도 가는 등 많은 추억을 쌓았다.
한 겨울에 산정호수로 여행도 떠났다. 아이들은 꽝꽝 언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놀았다. 호텔 콘도에서 노천 사우나로 피로를 풀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아끼고 절약하고 사느라 처음 먹어 본다던 이동갈비를 맛있게 뜯던 언니의 환한 모습이 생각난다.

그렇게 살던 언니가 위암에 걸려 5년을 넘게 병치료에 전념하던 시기에 쇼핑중독이 찾아왔다. 날이면 날마다 내게 전화해서 백화점 할인 점포에 발도장을 찍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물건을 샀다. 암이 뼈로 전이되어 재발하던 시기엔 쇼핑중독이 더 심해졌다. 언니의 물건뿐 아니라 내게도 이것저것 다양한 선물을 해줬다.
부담이 되어 거절을 해도 소용없었다. 이때도 나는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을때
라서 심적으로 부담이 컸다. 차츰 언니의 전화를 거부하게 되었다.

어느날 언니가 전화를 했다.
자신의 병으로 인해 쇼핑중독이 왔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남편과도 갈등이 심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차마 뭐라고 위로를 해줄 수가 없었다. 구구절절 하소연을 들어 줄 형편이 못됐다. 그러다 나는 3교대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던 시기라서 그야말로 절실하게 몸부림치며 살아가던 중이었다. 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날이 줄어 들었다. 언니는 입퇴원을 반복하며 더이상 병원에서 해 줄게 없다는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언니가 사망하기 한달전 병원에서 언니를 만났다. 양말을 여러켤레 사 가지고 방문했다. 언니는 나를 보자 반가워했다. 그리고 양말을 끌어 안으며 " 이건 내가 퇴원하고 예쁘게 신을거야." 라며 양말을 신지 않았다. 옆에서 언니의 아들이 제발 좀 아끼지 말고 신으라고  다그쳤다. 나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언니의 맨발을 보니 너무 속상했다. 바짝 말라 피골이 상접한 채로 미련이 남은 언니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언니는 그렇게 절약하고 아끼고
산 덕분에 서울의 큰 아파트 평수로 옮겨갔다. 이사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언니가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샀다던 모피 코트는 입어 보지도 못한 채 언니는 삶을 마감했다.
장례식장에서 밝게 웃던 언니의 남편 얼굴이 충격으로 남아 있다.
' 남자는 부인이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 더니 장례식장에서 환하게
고인의 지인을 대하면 어쩌란 말인가? 남편분이 오랜기간 아내의 병치레에 힘겨웠던지 그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1.2.3 그녀들은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모두 열심히 세상을 살던 사람들이었다. 쓰고 싶은것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알뜰히 살아 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건강에  이상이 생겨 모두 생을 마감했다.
죽음은 참 가까이 있고 무거운 주제다. 요즘은 나의 죽음보다 내 가까운 가족
친지. 지인. 친구. 동료들이 어떻게
될까봐 불안하다. 방송에서도 잦은 자살과 사건 사고  사망 소식에 두렵고 불안하다.
안심이 되지 않는다. 불안. 초조. 긴장. 공포라는 단어가 자꾸만 엄습해 온다.

남편과 어젯밤 늦게 앞집 마당 정자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앞집 아저씨가 산속에 이사 와서 사니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요즘 많이 무섭다고 했다.
" 갑상선에 이상 있나요? "
" 아니요. 이상 없는데요. "
" 그럼 뭐가 무서워요?"
" 뱀하고 멧돼지가 나타날까봐  무섭고... 컴컴해서 무섭고..."
"동물은 먼저 사람한테 해코지 않해요. 사람이 더 무섭지. 모든걸 다 내려놓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욕심을 버려야 한다구요." 이런다.

내 깐엔 많이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카톡에 마저 남은 그녀의2 발자취. 난 오늘도 여전히 지우지 못한 채 슬픈 감정만 남기고 돌아선다. 그녀에게 미안하다.-글김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