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음악, 방송, 詩 ,책 이

머리를 헹구며

안젤라-정원 2005. 4. 19. 09:01
-머리를 헹구며-


머리를 감을 때마다

수많은 머리칼들이 빠져 달아난다.

내게서 떨어져 나간 그것들은

어디로 가 버리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들은

단순히 머리칼만이 아닌

내 생애와 젊음과 생각들이

목숨과 함께

그렇게 시름시름 빠져 나가는 것은 아닐까


맑은 물에 적시어

향내 좋은 비누칠을 할 때마다

씻어내어 정갈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소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들을

아니라고, 아닌 척.

물줄기 속에 흔들어 몇 번이고 헹구어 본다.

(시인, 방송작가- 김오민님)


며칠 째 해는 보이지 않는다.

주방 한 켠 창문 밖에는 쑥쑥 올라와 있는 고층 아파트의

지붕들이 우뚝우뚝 키를 가르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옆길 사이로 나 있는 한적한 마을길에 놀이터가 보이고

교회 탑 지붕 끝에 십자가도 보인다.

산을 병풍처럼 죽 둘러있는 오밀조밀한 산마루엔 가느다란

빗줄기와 함께 하얀 산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치르륵’ 대고 달려가는 자동차의 소음이

정겹게 들려오는 비 오는 날의 정경!


늘 상 하는 습관대로 움직여본다.

세수를 하고 난 후,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털어내고

거울속의 낯선 여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음이 심란하고 울적해질 적마다 머리에 화풀이를 하듯이

그럴 때마다 달려가는 미용실.

한 달여 전에 나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염색이라는 걸 했었다.

가닥가닥 부분 염색은 여러 차례 해봤지만, 전체적으로 내 검정 머리를

노르스름하고 갈색 빛이 도는 색깔로 변화를 준 건

내 생애 커다란 변화에 따른 전환점이었다.


쑥스럽고 이상해서 얼굴을 들고 나다니기가 공연히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획기적인 내 변화된 모습에 신선함과 화사함이

돋보인다는 찬사가 쏟아졌음에 많은 위로가 됐다.

식구들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싫어하는 눈빛이 역력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이미 머리 염색은 끝난 일이다.

염색과 파마를 같이 했으니 종전엔 린스를 사용하기 싫어했어도

이제부터는 린스와 영양제를 함께 써줘야만 머릿결이 쉬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고운 결의 예쁜 상태로 유지한다는 말을 들었다.


거울을 볼수록 아줌마 같아 보이고 이상해 보이는 징후가

머리를 헹굴 때마다 더 진하게 다가선다. 주위에선

“ 아니, 그럼 그 나이에 아줌마 아니면? 아줌마이긴 하지만...

세련된 아줌마 같다. 한결 밝아 보인다.”

라는 말로 웃으며 이야기 해주기도 한다.


이전엔 단발머리 형태의 생머리처럼 유지하고 다녔으니 그다지

아줌마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이가 불혹을 훨씬 웃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무슨 억지 심보란 말인지...

아마도 나는 이전의 단발머리 적 그 시절의 추억을 오랫동안

잊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꿈꾸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설레던 시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마음 충만하고 여유롭고 가난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었는데... 미래라는 것은 불안함이 아니라

노력함으로 기대감이 충족될 수 있을 거라는 것.

뽀얀 안개가 걷혀진 후에 푸른 산봉우리가 드러나듯이

내가 꿈꾸며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취할 수 있을 거라는 무모한 생각들.

막연하지만 뭔지 모를 희망과 기대감을 잃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비가 온다. 특히나 이렇게 비가 계속해서 뿌려대는 날이면

축축함의 농도가 끈끈한 내 몸 상태를 벗어나 말끔함으로

치장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내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머리 털 뿐만 아니라 마음의 고통과

갈등이 깨끗이 씻어내 흘러져 버렸으면...


(글쓴이: 인샬라- 신의 뜻대로, 정원-필명, 실명-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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