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때문에-
인터넷을 시작해서 게시판에 글을 써 온지 얼마 되지 않던 시기에
어떤 분이 자신의 이름에 얽힌 글을 올렸었다.
그러자 꼬리 글이 수도 없이 달렸었는데, 꼬리 글 달은 사연들은
하나같이 여자 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 또한 이름 때문에 싫은 기억들이 많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친정아버지께서는 위로 오빠를 낳고, 이듬해에
태어난 내가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서운함에 부엌에서 혼자 밥을
드셨다고 하셨다. 이름을 지을 때에도 아버지의 고향인 이북의 유명한
평양 기생 이름을 따서 짓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적에
집에선 나를 ‘옥춘’ 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기생의 이름을 빌어다 지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당혹감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헌데, ‘옥’ 자 돌림이 좋지 않다는
타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는 친정어머니께서는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자랄 때 하도 내가 순둥이 같이 착하다고 하여 꽃부리 영(英)자에
순할 순(順) 자를 넣어서 이름을 지어 호적에 올렸다고 들었다.
나의 친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름이다.
오빠의 이름만큼 좋은 이름을 아직까지 들어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내 이름은?
80년대 초 아파트 개발로 부동산이 한창 들썩 됐었다.
복덕방(그때는 복덕방이라고 불렀다)과 큰손들인 복부인들이
아파트 당첨과 분양으로 기세 좋게 나갈 적에 내 이름은 매번
방송과 신문에 오르내렸다. 그것이 아파트 ‘영(0)순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내 이름은 천하에 좋은 이름이라고 위로까지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직장생활을 했던 당시에도 여러 가지 불편한 사항들이 많았다.
내 이름을 분명히 밝혀야 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내 이름 석자를 밝히길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미스 김’ ‘김 양’
등으로 얼버무리기도 했다. “ 이름이 뭔가요?” 라고 물으면
겨우 마지못해 모기소리 같은 목소리로 작게 대답하곤 했다.
촌스럽고 싫어서... 흔해빠진 이름이라서...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뒤져본 적이 있다.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는
내 이름 석자는 페이지수로 몇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김영순, 김영순, 김영순, 김영순, 김영순...
끝이 보이지 않도록 많은 이름들이 전화번호부 양면을 가득 채운 채
지겹도록 같은 이름이 즐비했다.
어디를 가나 둘 이상은 되는 동명이인도 흔했던지라 난, 나름대로
독창성을 갖고 싶은데 그렇지 않아서 속상한 마음을 가득 안고 살았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긴 하지만, 불만 또한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결혼 후 한동안 내 이름 석자를 잊고 살았다.
나는 아이의 이름을 순 한글로 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댁어른이 지어오신 이름을 내 마음대로 할 순 없었다.
아이이름은 ‘동녘에서 밝아오는 해처럼 빛나라’ 는 뜻에서
지어온 이름이었다. 아이의 이름을 받아 들고 입으로 가만히 되뇌어보니
어릴 적 이름으로는 부르기 쉽고,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가
크고 나면 놀림감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자라면
안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드렸지만 그냥 내 의견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아이가 세살 무렵이었나? 한국만화 ‘둘리’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
우리 아이의 이름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나는 흔해 빠져
남의 주목조차 받지 못했던 내 이름에서 아이의 엄마라는 이유로
그야말로 한번 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00이 엄마’ 가 돼 버렸다.
학교에서도 학부모로써 내 이름 석자보다는 다들 00이 엄마 로
각인되어 갔다. 아이는 난리가 아니다.
머리가 크고 나자 자기 이름이 남들의 놀림감이 된 후로는 이름을
개명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잘 설명을 해주고 또 해줘도
아이는 자기 이름이 싫단다. 크면 자신이 꼭 이름을 개명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나는 몇 해 전에 정원이라는 필명을 선물 받았다.
내 이미지에 비슷하게 잘 어울려 지었다는 ‘정원’
산기슭에서 바라본 성당의 담벼락에 환하게 피어나던 장미 넝쿨을
보고 내 아이디 (kysflower)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것이 마음속에 늘 푸른 꿈과 희망과 모두를 담아서 ‘마음의 정원’을
가꾸듯이 잘 전달해보라는 의미에서 받은 것이었다.
처음엔 어색하고 이상해서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차츰 사용하다 보니
익숙해짐을 느꼈다. 40년 이상을 써왔던 내 이름보다는 어떨 땐
필명에의 부름이 말하기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앞으로는 이 필명과 함께 이름이 빛나게 쓰여 질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인터넷에서 ‘핑크정원’ ‘보랏빛 여인’에서 ‘인샬라-정원’ 등으로
많은 시간 속에 내 이름을 대신하고 있던 닉네임.
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닉네임 대신에 필명이나 본명으로 바꿔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는데
인샬라(신의 뜻대로) 가 아무래도 사이버 냄새가 풍긴다는 것이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필명이나 본명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글자 제한에 걸려 모두 다 쓰기가 곤란했다.
어찌 보면 나라는 이미지가 닉네임으로 굳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글과 닉네임이 한층 잘 어울려 멋스럽다는 얘기를 자주 듣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변화를 한다는 것이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며칠 시간을 두고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해보았지만, 여전히 내 실명을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사용하기에는 글쓰기에도 부담감이 들고,
익숙하지가 않은 것 같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젠 변화가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예전처럼 익숙해진 그대로의 닉네임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을 잠시 헷갈리게 한 점이 많이 죄송하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바라며...
모두가 촌스럽고, 흔한 내 이름 때문이리라.
사실, 촌스럽긴 해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내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
더 정겹고, 좋을 때가 많다. 내 스스로는 '영순(英順)' 이라고 말하기를
아직도 쑥스러워하면서도...
(글쓴이:
인샬라-신의 뜻대로, 정원-필명, 실명-김영순(金英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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