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병술 년 개의 해-
2006년도는 병술년 개의 해라한다.
개띠라 하면 단연코 떠오르는 것이 ‘58년 개띠’ 일 것이다.
아울러 58년 개띠 생들은 ‘뺑뺑이 세대’ 라는 그리 달갑지 않은 칭호를 얻었다.
헛소문인지 근거 있는 얘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고 박정희 전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로 인해 입시 제도를 바꿔 고등학교를 뺑뺑이로 전환해서
진학한 세대라고도 한다. 아주 오래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때의 기억이
내게도 또렷이 남아있는 걸 보면 인문계 고등학교의 입시제도에 대한
혜택이 당시로선 역사에 남을 아주 획기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었다.
내게도 58년 개띠 해에 태어난 오빠가 있다.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난 나는 내 위로 오빠가 한 분 계시고,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었다. 범띠 生인 남동생은 서른아홉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오빠와 막내 동생 둘 뿐이다.
결혼이란 절차를 통해 내게 새로운 가족들이 늘어나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친정식구들은 늘 내게 아련한 슬픔과 묵직한 통증을 수반하는
사랑하는 가족임에 여전히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친정의 모든 대소사를 챙기고, 지금까지 집안 경제를 책임져 온
오빠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시집간 딸로서 마음껏 도와주지 못하는
안타까움 또한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 보니
오빠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늘 안쓰럽고, 가슴이 아프다.
오빠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인문계와 실업계 고등학교를 사이에 두고
많은 갈등이 있었다. 장남으로써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집안 형편이 급속도로 나빠진 우리 집은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오빠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친정아버지는 당시 해운회사 소속이었고, 인천의 연안부두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일궈왔었다. 작업 현장이 열악하다보니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사고의 위험성은 늘 도처에 널려있었고, 일도 매우 고달프고 힘들었다 한다.
추운 겨울에도 도시락 두개씩을 싸가지고 자전거 뒤에 싣고 새벽부터
일을 나가시던 친정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련히 떠오른다.
오빠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을 당시에 아버지는 직장에서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을 하고 계셨었다. 병간호할 사람이 없어 나는 밤이면 병실에서
아버지를 간호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학교를 다니곤 했다. 불행은 연이어 찾아온다고 했던가?
병원에서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오른쪽 손가락 엄지와 검지
두 곳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이때에 처음으로 우리 집에
TV가 생겼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사고 후, 산업 재해 보상금으로 들여온
흑백 TV를 보면서 자랐다. 이런 상황에서 오빠는 인문계 진학을 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오빠는 앞으로의 취업 전망도 밝고, 경쟁률이
치열한 실업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냈고, 시험을 봐서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오빠는 졸업 전에 이미 항공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집에서
김포공항까지는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자세로
직장생활을 충실히 이어 나갔다. 그러다 군대를 갔고, 군을 제대하자마자
시험을 봐서 야간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병행하면서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다.
항공회사에 입사했을 당시, 오빠는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이므로
기계를(비행기) 다루는 일을 했었다. 회사에서는 김해에 공항을
새로 신설한다고 했고, 일부의 기술자들이 이동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오빠는 갑자기 지방 발령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 오빠가 직장을 다닌 지
몇 달 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모든 생계는 오빠가 책임을
져야 했기에 지방 발령은 우리 집에 심각한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여기저기에서 자문을 구하던 오빠는 사무직 승진 시험에 통과하면
김포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오빠는 코피를 쏟아가며 밤새워 시험공부에 매달렸고, 드디어 그 어려운
사무직 승진시험에 합격하게 되어 20여 년간 김포와 인천을 오가며 근무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특별히 마련해준 외국 여행도 수차례 오갔고, 진급도
수월하게 이어져서 나는 친정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놓고 있었다.
그러다 IMF를 맞았다.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의 인원감축이
이어졌고, 문을 닫는 회사들도 많았고, 강제로 은행을 합병하고, 없애는
작업이 진행됐다. 오빠가 다니던 항공회사도 엄청난 부채로 인해 없어진
부서들이 많았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책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한다. 오빠 또한 고민 끝에 결국은 회사를 나오기로
결심하고,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이없는 상황에 떠밀려 직장을 그만두게 된 오빠는
심리적 공황상태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정신과적 치료를
겸하는 둥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한동안 우울 증세로 심각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잇따른 불행에 (동생의 죽음과 여러 가지 일로) 오빠도, 나도 너무나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동생의 죽음을 보고 나서야 마음을 되잡은 오빠는
인근에 위치한 공장을 다니며 아주 최소한의 급여를 받으며 그나마
살아보려고 많은 애를 쓰고 있다.
오빠가 처음에 입사한 경우처럼 기술자로 그대로 남았다면
형편이 조금 더 나아졌을려나?
하지만, 예기치 않게 일은 벌어지고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은
상황을 남기며 우리의 주변을 서성거리며 괴롭힌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살아가려 애쓰는 오빠를 볼 때마다 마음 언저리엔
늘 안타까움이 자리하고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하지만, 같은 형제지간이라도
내가 오빠를 생각하는 것만큼은 남다른 것 같다. 장남으로서의 위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기에 오빠네 가족이 건강하고,
순탄하게 잘 지내고 모든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친정식구 중 오빠와
가장 절친하게 지냈던 나는 결혼 전, 올캐 언니의 시샘을 듬뿍 받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마음씀씀이가 유별났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결혼 후 많이 소원해진 오빠와의 사이가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늘 마음속엔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주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개와의 인연이 많은 나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있고, 58년 개띠 生인
오빠를 비롯해서 시누이도 친정 올캐언니도 같은 58년 개띠 동갑내기이다.
막내 동서까지 합하면 개띠 생인 사람들과는 인연이 깊은가 보다.
연상인 58년 개띠와는 마음도 서로 잘 통하는 편이고, 이제껏 얼굴 한번
붉힌 일 없이 잘 지내왔으니 남들이 흔히 말하는 잘 맞는 사이라고나 할까?
ㅠㅠ
아무튼, 2006년도 병술년 개의 해에는 활달하고, 충직하고, 신뢰성 있는 개의
특성대로 모든 사람들이 활기찬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나 ‘58년 개띠’
생들은 삼재가 물러나 괜찮은 해라고 하니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글쓴이: 인샬라-신의 뜻대로, 정원- 필명, 실명- 김영순)
참고: 뺑뺑이 (시험을 치루지 않고, 추첨으로 학교 배정)

(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시 한 편 소개합니다. )
- 올 해는 개의 해- (김광규)
당신이 소설을 한 편 쓰면/ 온 세상이 모두 주목하고/
당신이 시집을 한 권 내면/ 목마르게 기다리던 독자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할 것 같습니까/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죽은/ 어느 시인의 영원한 젊음을/
당신은 이미 잃었습니다./
마흔 한 살에 세상을 떠난/ 어느 소설가의 미진한 생애를/
당신은 아직도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문학을 저울로 달고 자로 재는 당신이/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는 동안에도/
세상은 쉴새없이 달라져서/ 어느 날인가 갑자기 당신의 저서가/
빛바랜 종이뭉치가 되어/ 뒷골목 고서점에 굴러다니고/
어느새 낯선 늙은이가 된 당신이/ 쉰 살을 앞두고 죽은/
어느 평론가를 부러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올해는 개의 해./
내년은 돼지의 해./
해마다 띠를 따라 변신하지 말고/ 세상을 손으로 움켜잡지 말고/
집어 삼키지 말고/ 눈을 통하여 조금씩/
가슴속에 넣을 수 있다면
이미지- 근하신년 (펌)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블로그와 검색어 (0) | 2006.01.21 |
|---|---|
| 사랑의 매 (0) | 2006.01.05 |
| 황우석 교수님과 노성일 이사장님의 기자회견을 보며 (0) | 2005.12.16 |
| 눈 오는 날의 단상(斷想)들 (0) | 2005.12.09 |
| 살다 보니 이런 고마운 일도 있어~~ (0) | 2005.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