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눈 오는 날의 단상(斷想)들

안젤라-정원 2005. 12. 9. 01:05

- 그리움은 눈이 되어-


올해 들어 첫눈이다.

밤사이 첫눈은 소리 없이 온통 주위를 하얗게 수놓으며 다녀갔다.

첫눈치고는 제법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아파트 지붕과 바닥에 쌓여진 눈을 바라보며

진짜 겨울다운 진풍경에 할 말을 잃고, 멀리 불빛을 따라 시선을 돌려본다.

이제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일까?

들뜨던 감성도 서서히 사라져가는 나이.


눈이 와서 기쁘다는 표현보다는 출근길 차량운행이 더 걱정되고,

노약자들의 발걸음이 두렵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도 기말고사를 치루는 아이가 일찍 끝날 것을 생각해서 서랍장을

뒤적거리며 장갑 하나를 챙겨주었다.

'아마도 오늘 같은 날은 친구들과 눈싸움이라도 하고 싶어지겠지.' 라고...


작년 이맘쯤보다 약간 늦어진 첫눈 소식으로 이 아침의 칼럼 문을 열어본다.

어린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는 순수한 그 때의 그 마음으로

모든 것이, 모든 이가 그립다. 그 시절이 참, 좋았는데...

과거의 기억에 얽혀 사는 이는 발전성이 없다는데...

그러면 어떠랴?


지금 현재는 과거의 '나' 라는 과정을 거쳐 왔고,

미래는 또 과거와 현재의 밑거름이 될 것임을... (2003. 12. 8)



++ 하얀 눈이 떡가루 되어 ++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길을 나서는데, 주위의 시야가 뿌옇고, 어두침침한

잿빛이다. 잠시 후!

뚝 뚝뚝 떨어지는 눈발이 새로 산 무스탕 웃옷 어깨 위로 흘러내린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는 빗물처럼 앞을 가리는 눈이 허연 가루가 되어

하늘하늘 소리 없이 계속 뿌려지고 있다. 하얗게 솔 솔솔 내리는 눈가루가

마치 하얀 떡가루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다.


어릴 적  집에선 제법 큰 쌀가게를 했었다.

월남(베트남)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더운 날씨에 소화불량으로 병을 얻으시고,

직장보다는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가게 터가 딸린 한옥을 얻으셔서

인천의 공설운동장 근처의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이 오면 자전거로 쌀 배달을

나가시던 아버지를 도와 우리들은 돌아가며 가게를 봤었고, 집 앞 넓은

공터에서 놀면서 가게 터를 지키곤 했었다. 무엇보다도 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쌀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쌀은 돌(티) 이 많아서 기계에 털어서 다시 담아 팔았었는데,

쌀을 턴 후에 나오는 싸라기 쌀알들이 밑바닥에 그득히 남겨졌었다.

우리는 그 싸라기 쌀들을 일일이 손으로 골라서 작업을 하곤 했는데,

이 싸라기 쌀을 모아서 엄마는 집에서 떡을 만드셨다.


커다란 시루에 솥단지를 올려놓고, 밀가루 반죽을 하여 시루의 겉 테두리를

막고, 한참을 뜸을 들이면 백설기 떡이 완성되곤 했는데...

우리들은 떡이 완성되는 그 시간을 참지 못해 여러 번 부엌을 들락거렸다.

시루단지를 열면 설익는다며 야단치시는 엄마 몰래 살짝 겉 보자기를

열어보곤 했었다.


다 쪄진 떡을 양재기에 담아 손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백설기같이 생긴 떡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원래 흰 쌀가루로 해야 제 맛이 나는 백설기 떡이

모래를 씹는 건지, 떡을 먹는 건지 도무지 신경이 거슬리고,

목구멍에서는 '' 으지직'' 거리는 돌가루 씹는 맛에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떡을 수시로 먹을 수 있는 건 쌀가게 덕분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 백설기 같은 그 떡 먹기가 엄청 곤혹스럽고 싫었었다.


친정엄마는 가게를 그만두고 난 이 후에도 명절에 떡을 하면 꼭 그 시절에

자주 해먹었던 백설기 떡을 한 아름 하시곤 했다. 하얀 떡가루로 만들 수 있는

떡이란 떡은 다 만드셨는데, 백설기에 콩과 찹쌀을 버무리는 떡도 만들었다.


떡을 해 놓으면 우리들은 뜨거울 때 잠깐 손가락으로 집어 먹다 남아서

굴러다니다 결국, 엄마는 다른 손님들을 불러들이고, 남 퍼주기에 늘 바빴다.

지금도 나는 백설기 떡을 잘 먹지 않는다.

하얀 떡가루만 보면 질리도록 먹었던 백설기 떡이 생각난다.

(2002. 11. 28 자)

 

-눈 오는 날의 도로-


첫눈이 온 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고, 꼼짝하기가 싫다. 집을 나서면

도로 곳곳은 빙판길로 조심하지 않으면 낭패 당하기 십상이다.


연말이 다가오면 여기저기 파헤쳐놓은 도로는 질퍽해진 눈과 뒤섞여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공사 중인 인부들의 추위도 걱정이지만,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빛 또한 곱지가 않다. 시민들의 불편함은 고려하지도 않고

해마다 시에서는 길바닥에 그야말로 피 같은 시민들의 세금(돈)을

쏟아 붓는다. 멀쩡하게 잘 정비된 도로를 뜯어 고치느라 주위엔

너저분한 공사 도구와 더불어 먼지가 가득하고, 산만하다.

그곳을 비집고, 볼 일을 보러 갈 때면 저절로 한숨이 나고, 짜증이 난다.

벌써 몇 달째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더 가관이다.

외출 후,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이 집 현관 앞까지 묻혀와 시커멓게 얼룩져있다.

공원정비를 위해 몇 달을 오가지도 못하게 막아놓더니만, 그곳이 완성되니

이제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상가의 중심부 이곳저곳을 다 헤집어 놓았다.

길가는 사람들의 불편함도 그렇겠지만, 상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먼지와

굉음으로 그득한 주위가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왜 상가의 주인들은 단체로 몰려가 시정을 요구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시에서는 시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건지... 

아니면 강압적인 시의 태도에 저항할 수 없는 결함이라도 지닌 건지...


시를 위해 일한다는 공무원들은 제발 탁상공론에만 그치지 말고, 정말로

필요로 하는 곳에 세금이 제대로 쓰여 졌으면 좋겠다. 주위를 둘러보고

꼭 정비를 해야 될 곳을 찾아 제때에 일처리를 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한다면 연말에만 몰아서 한꺼번에 예산을 풀어 쓰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을 것 아닌가?


눈이 와서 날씨까지 추운데다 이런 일로 시민들의 오가는 발길을 묶어놓는

경우는 없어져야 되겠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엉뚱한 곳에

엄청난 예산이 낭비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2005. 12. 9 )

 

(글쓴이: 인샬라- 신의 뜻대로, 정원-필명, 실명- 김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