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호떡과 작은 동전의 행복

안젤라-정원 2005. 1. 13. 08:30

-호떡과 작은 동전의 행복-


겨울이라 그런지 모 회사 제품의 호떡이 인기이다.

프라이팬에 버터나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따끈하게 구워서

먹으면 출출할 때 먹는 맛이 아주 일품이다. 간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집 근처의 슈퍼엔 호떡 제품이 동이 나기 일쑤다.

기다림에 지친 탓인지 아이는 자꾸만 ‘먹고 싶다’ 고 채근한다.

할 수없이 호떡을 사러 이웃 아파트의 상가를 전전하다 그곳도

없다기에 길을 건너고 신호등까지 건너 거리가 먼

대형슈퍼까지 가게 되었다.


이곳엔 빵 제품만을 모은 진열대에 호떡을 일렬횡대로 잔뜩 쌓아두었다.

그곳을 지나가니 다른 회사 제품의 부드러운 맛을 유난히 강조한

빵 12봉을 담아 놓은 제품이 눈에 들어온다.

두 개의 묶음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의 제품을 덤으로 주면서

가격은 한개 값만 받는다고 써져 있었다.

오늘은 대폭 세일을 하는지 층층인 계단식으로 쌓아두기까지 했다.


집에서 호떡만을 산다고 급히 나왔던지라 가지고 나온

동전 지갑엔 천원 권 지폐가 4장 있었고, 동전이 몇 개 달랑거렸다.

호떡도 호떡이지만, 나는 부드러운 맛의 다른 빵이 더 탐이 났다.

아무 때고 배고플 때 집어 먹기 편하게 되어있는데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먹기에도 무난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엔 제과점의 빵 가격이 많이 오른 터라 나로서는 부담 없는 가격에

맛있는 빵에 대한 선호도가 생겨서 그런지 그런 제품에 유독 눈독을

들이고 찾게 되는 것 같다. 집에 오븐이 없으니 해먹을 수도 없고...

(가스레인지에 생선 그릴이 있어 겨울이면 군고구마는 해 먹을 수 있지만)


우선 호떡 한 봉을 집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니, 이천 원하는 

호떡이 천 사백 원이란다. 육백 원이라는 동전이 생각지 않게 생겼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혹시나 해서 동전 지갑 안에 있는

돈을 모두 쏟아 보았다.

웬걸? 천원 권 지폐가 두장이나 남아있었고, 오백 원짜리 동전이

두개, 백 원짜리 동전이 다섯 개, 오십 원 동전이 한개,

십 원짜리 동전이 두개가 있었다. 계산을 해보니 3, 570원.

내가 사고 싶어 하는 제품은 3, 550원이다.


오호라! 이게 웬 횡재인가? 잘됐다 싶다. 지갑 안에 있던 돈을

모두 털어 호떡과 세 잎 클로버가 그려진 행복0000을 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우습게 알았던 동전이 작은 기쁨을

가져다 준 셈이다. 동전이 없었더라면 다시 집에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보태서 사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오늘은 공연히 횡재한 기분도 들고,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임신한 나는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결혼한 여성이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았던지라 조금이라도 젊을 때, 경제적 기반을 잡아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은행에 근무했던 나는 임신으로 인해 직장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객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물론, 직장상사와 동료들의

눈초리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무엇보다도 임신 초기의 입덧 증상으로 인해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 냄새는 물론, 화장품, 김치 냄새까지 역겨워했고, 툭하면

토악질이 나서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하곤 했다.


은행 셔터가 내려가고, 업무 뒷정리를 하는 동안 하루 온종일 업무로

시달린 내 몸은 뱃속의 아이의 발길질이 가세를 더해 축축 늘어졌다.

업무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지고, 견딜 수 없는 배고픔이 밀려오는 걸

견디지 못한 나는 혼자서 또는 옆 직원인 언니와 함께 은행 뒷문을

빠져나가 은행 앞 노점상에서 파는 호떡을 사먹었다.

호떡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토악질하는 경우도 없었다.

(나중엔 노점상에서 튀김도 만들었는데, 그때 호떡과 튀김이

없었더라면 우리 아이는 어땠을까 싶다. ㅠㅠ)

호떡으로 인해서 배고픔을 이기게 해주고, 힘들었던 임신기간을

잘 견디게 해준 것이 더없이 감사하다.

그만큼, 호떡은 내게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간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뱃속에 있던 우리 아이는 유난히 호떡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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