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산골일기-기다림의 미학

안젤라-정원 2021. 6. 21. 14:28

★산골일기-기다림의 미학★

텃밭에 모종을 심은지 두달 정도가
지났다. 읍내 시장에서 작고 앙증맞게
생긴 모종을 사다가 화단과 텃밭에
돌을 고르고 흙을 다듬어 심고
물을 주었다. 남들이 흔히 사용하는
비료 하나 주지 않아도 나날이 성장하는
작물을 바라보면 신기하다.

지금은 초막골공원으로 탈바꿈
되었지만 오래전 그곳에 주말농장
체험을 경험한 적이 있다.
시댁의 사촌이 이웃에 살았는데
우리에게 작은 텃밭을 빌려주면서
가꿔 보라고 하였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우리는 열무와
상추. 쑥갓의 씨를 밭에다 뿌렸다.
한달 정도가 되자 잡풀처럼 자란
잎들이 빽빽이 자라 숨 쉴 공간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일찍 산속에
있는 주말 농장을 찾아 숨쉬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물을 주었다. 어린순은
뽑아다 샐러드나 고추장 무침인
반찬을 해 먹었다.

밭 근방에 호박, 가지, 오이, 고구마,
감자도 심었으나 생각만큼 자라지 않았다.
씨를 뿌린 작물은 제멋대로 자라나
솎아내기 바빴다. 고구마나 감자같은
작물은 제대로 열매가 맺지않아
실효성이 없었다.

어느날 남편이 상추 모종을 사다가
씨뿌린 상추 건너편에 심었다.
한번 자라기 시작한 상추는 뜯으면
새로 상추가 나는 기적을 보여 주었다.
몇번을 뜯어도 죽지않고 신기하게
살아나는 상추를 보니 '기다림의 미학'
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기다림 후에 맞는 반가움은 환한
미소였고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산골에 이사온 후 남편은 예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파, 깻잎, 고추,
가지, 상추 등 모종을 사다 심었다.
텃밭이 작아 더 이상 심을수도 없었고
고구마나 감자같은 작물은 멧돼지나
동물들의 먹잇감이된다고 해서
심지 않았다.

모종이 넘 작아서 힘이 없어 보였다.
저렇게 작은것이 어떻게 비바람을
헤치고 자랄까 걱정이 되었다.
이곳의 봄 날씨는 변덕이 심했다. 
비가 오는 날이 많았고,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져 한겨울 날씨가 되는 날도
더러 있었다.

오늘 아침 화단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고추 모종에 고추 열매가 앙증맞게
매달려 있어서였다. 우리집은 아침마다
우유에 요구르트를 섞고 바나나와 사과
견과류 등을 넣어 믹서기에 갈아 먹는다.
집에 남은 과일을 넣기도 하고 요즘은
오디를 섞어 먹기도 한다. 믹서기와
컵에 따라 마신 후의 잔여물은
개숫물에 그냥 흘려 버리지 않고
텃밭에 준 지도 한참 되었다.

처음엔 주로 고추 모종쪽에 중점을 두고
정성을 들였다. 한쪽 귀퉁이에 맥없이
서있던 가지와 대파에도 신경을 쓰고
믹서기에 갈은 남은 물을 번갈아 주기
시작했다.

기다림의 기쁨이란 이런 것인가?
날마다 커가는 작물이 신기방기하다.
언제쯤 고추다운 열매가 맺을지 무척
궁금하던 차, 너무 반가움에 고맙기까지 하였다. 상추와 깻잎은 거의 매일 따
먹어도 새로이 잎이 나고 자라는 모습이
어여쁘기 짝이 없다.

텃밭에 자라는 작물 뿐이 아니다.
집 마당 앞과 앞집 마당 근처에
매실 나무와 야생 개복숭아가 있다.
나무가 높이가 꽤 되고 언덕 기슭에
애매하게 자리하고 있어 채취하기가
어려운 위치에 서 있다.

남편은 작심하고 매실과 개복숭아를
따러 나갔다. 매실은 아직 크기가 작지만
싱싱했고 양은 적었다. 더 따고 싶어도
위험해서 욕심 부리지 않고 그대로
매실청을 담았다. 개복숭아는 한 주 더
있다 따기로 하였다.

오늘 드디어 개복숭아를 따왔다. 털이
부숭부숭 달린 개복숭아는 매실보다
오히려 실하니 더 좋아 보였다. 색깔도
선명한 청록색에 양도 매실보다 많았다.
매실도 그렇지만 개복숭아는 털이 있어
알레르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남편은 채취시 조심 한다고 팔에 토시를
끼고 땄는데도 몸이 가렵고 팔 쪽에 작은
발진 모양의 알레르기가 생겼다고 한다.
나는 효소를 만들 때 일회용 비닐 장갑을
끼고 손에 털이 묻지 않게 주의 하면서
담갔다. 

하나를 얻으면 나머지 하나는 잃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모든 약초는 몸에 이로운 면이 있는 반면
부작용도 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수확의 기쁨 뒤에 
알레르기를 유발한 매실과 야생
개복숭아를 보면서 우리의 삶도
그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천천히 기다릴 일만 남았다.
3개월 후 매실은 건져야 한다.
금방 시간이 흐르고 지나가겠지.
가지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고추도 따 먹을 날을 기다려야 한다.
대파도 쑥쑥 자라고 있으니 사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갑자기 기다리는 자에게는복이 오나니...
그런 말씀이 생각난다.
기다림은 참 아름다운 미학이다.

(2021. 6. 21. 월/글: 김영순-정원)


* 신기방기의 뜻-믿을수 없을 정도의
매우 색다르고 놀라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