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컨닝과 진정한 용기

안젤라-정원 2005. 3. 28. 08:04


-컨닝과 진정한 용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무거운 책가방을 힘없이 내려놓으며
걱정에 휩싸인 채, 고민을 내게 이야기해온다.

“ 엄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 뭔데? 지난번 시험 엉망으로 나왔니?”

바로 얼마 전 시험기간이 끝나 그것 때문에 ‘아이가 그런가보다’ 라는
짐작으로 나는 가슴 조마조마해가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 실은, 내가 같은 반 친구가 시험 때 컨닝 한 사실을 알고 있거든.
나는 그냥 넘어 가려고 하는데... 이걸 알고 있는 친구가 꼭 밝히고
넘어가야 되는 거 아니냐며... 자기 엄마에게 물어보니 선생님께
알리는 것이 좋겠다면서 혼자 가기 뭣하니까 같이 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내가 그동안 배운 바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잘못된 일은 시정해나가고 말을 해야 진정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배웠는데... 엄마도 그렇게 살아오고, 날 그렇게 교육시켰잖아.
엄마 생각은 어때?”
“ 그래?”

순간, 나는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라 당황했고, 어떤 게 옳은 건지
나도 판단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번뜩 스쳐갔다.

“ 그럼, 이미 시험점수는 다 나온 거니? 한 사람이 그런 거야?”
다시 질문을 넣어본다.
“ 점수는 이미 나왔지만 고칠 수 있는 시간은 남아있고, 한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갈 텐데... 자그마치 7명이라는 사실 이예요.”
“ 넌 어떻게 알았는데? 컨닝 했다는 짐작만으로 판단하면 큰일이지.
안 그래?”

“ 물론, 직접 당사자에게 들어서 확인한 얘기죠. 선생님께 말하려고 하니
고자질이라는 생각 때문에 괴롭기도 하고 그래요. 하지만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고 치렀던 아이들에게는 일, 이점의 점수 차이가 얼마나 큰 등수를
좌우하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너무 커다란 피해잖아요. 그리고 한번
그렇게 컨닝 한 아이를 모른 척 한다면 이 다음에도 계속 컨닝 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양심을 팔아먹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 그래. 네 말도 맞긴 한데...시험기간에 네가 본 사실을 밝히는 일이면
나도 뭐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지만 너는 보지 못한 사실이고,
이미 점수가 나왔는데 선생님께 밝혀봤자 친구들에게 고자질하는
나쁜 친구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잖아. 만약 그대로 지나간다면
당사자들은 숨긴 사실 때문에 오히려 두고두고 양심상 괴롭지 않겠니?
그것이 더 형벌? 이라고 보는데... 엄마는...”

갑자기 이 말을 들은 아이는 화를 벌컥 내면서 큰소리로 대들 듯
말하기 시작한다.
“ 친구 엄마는 선생님께 말해야 된다고 했다는데... 엄마는 왜 두 얼굴을
가지고 말을 하는 거예요? 나한테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여지껏 그렇게
키워왔잖아요. 나랑 관련 없다고 피해가는 건 비겁한 자 아닌가요?
엄마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러면 안 되죠. 억울한 친구들, 억울한
피해자가 분명히 있는데...”

“ 그래? 그럼 맘대로 해. 네가 생각한대로 하던가. 엄마 생각을 물어봤으면
참고하겠다는 말을 해야지. 엄마 의견은 묵살하면서 성질부리고 그럴거라면
뭣 하러 의논을 해와? 의논을 하긴...”

나도 같이 열이 오르면서 ‘씩씩’ 대기 시작했다.
아이의 의견이 이해는 가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데...
우리와 상관없는 일에 공연히 나서서 우스운 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음에 상대방으로부터 보복? 에 가까운 부담감마저 느꼈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아이에게 화를 낸 것은 어쩌면 그렇게 내 속의
부끄러움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이 후에 아이는 밤새 혼자서 고민하다가 그 친구와 합심해서 선생님께
알리기로 작정하고 교무실을 찾아갔나보다.
결국 컨닝을 했던 아이들은 모두 해당 시험 과목의 점수는 영점 처리되었고,
석차 순위가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난, 아들이 경험한 위 일을 겪으면서 아직도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고,
그릇된 건지 아직도 확신에 차있지 못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아이는 진정한 용기를 발휘했다는 것에
담담한 마음이다. 그런데 후일 아이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라며 자신의
심경을 토로해 놨을 때 나 또한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공연히 일을 저질렀구나?’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아이에게 나도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예전에 학교에서 졸업시험을 치루 던 중, 친구들이 책을 펴놓고
컨닝 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그들은 여럿이서
짜고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다. 물론 그들의 성적표에는
영원토록 좋은 성적으로 기재되어 있을 것이다.

컨닝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이 학생들을 믿고, 마지막 시험이니
학생들의 양심에 맡기는 좋은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다면서 시험 감독관을 배치하지 않고 보게 된 시험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정직하게 시험을 치렀지만 다른 아이들 대부분은
양심에 벗어난 행동을 했다.
그 결과 나는 석차가 뒤로 한참 밀려나게 되었다.

졸업 후, 성적표와 졸업증명서를 뗄 일이 있어 학교에 찾아갔던 나는
내 성적표를 보고는 얼마나 속이 쓰리고, 마음이 상하던지...
그만 눈물이 앞을 가려 두고두고 그때의 일을 짚고 넘어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당시의 내 용기 없는 못남과 부끄러움, 아쉬움에
치를 떨었다고나 할까? 이런 말을 하면 너무 심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땐 정말 그랬다.

물론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시험이라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와 전환점을 가져다주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기회)이기도 하다.
성실함과 정직함을 가진 이들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학교, 사회,
이웃, 국가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광고 카피 중에서 뜨고 있는 말처럼 ‘남들이 아니라고 할 때 <예>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 가 이상한 취급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진정한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양심에 벗어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사람이기에 실수라는 것을 할 수도 있고, 모든 일에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 또한 진정한 용기 아닐까?
그들에게도 아낌없는 박수 또한 보내줄 일인 것 같다.

(글쓴이: 인샬라- 정원- 실명-김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