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재취업 도전에의 실패 경험담

안젤라-정원 2005. 5. 24. 09:13
하루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심란하기만 했다.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방황하던 내 모습. 생각할수록 창피하기도 하고, 너무 속이 상한다.

며칠 째 잠도 설쳤고, 얼굴엔 뾰루지가 돋아 거칠어진 느낌도 든다.

강아지 목욕을 시키면서 혹시나 그 사이에 전화가 올까 염려 되어

휴대폰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청소를 마치고 점심을 먹었으나

그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마음이 편치 않다. 안정이 되지 않는다.


집 근처 은행에 둘러 공과금을 내고 볼일을 본 다음 대형마트에 가서

찬거리를 사가지고 오는 도중 전화벨이 울린다. 순간 움찔했다.

떨리는 손으로 폴더를 열자 남편의 전화였다.

“ 아직 연락 안 왔어.” 힘없는 내 목소리에

“ 그래? 아웃인가 보다. 뭐 맛있는 것 좀 사오지. 이따 한잔 하자.”


집으로 돌아와서 0000 00 기관 사이트에 들어갔다.

아침에 본 똑같은 공지사항이 올라와 있다.

날짜는 이미 지난주에 써진 공고인지라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날 단체로 몰려갔던 0 병원에서는 신체검사 결과는 월요일쯤에나

나올 거라고 했다. 0000 에서도 합격자 발표는 월요일부터

전화 연락을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날짜 계산을 해봐도

하루사이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 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미리 짜여진 대로 형식적인 절차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저녁을 짓는 시간까지도 전화 연락은 없었다. 혹시나 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고 싶어 본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의 수화기엔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라는 음성 메시지만 떴다. 다시 인사과로

전화 통화를 하자 이미 금요일에 전화 연락까지 끝냈다는 것이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번엔 서류심사에서 예전보다 여유 있게 많이 뽑았다 했으니

어느 정도의 사람이 떨어지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도대체 몇 명이나 합격한 건지... 왜 떨어진 건지...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대답만이 되돌아왔다.


남편과 홍어무침에 막걸리를 한 잔하며 속상함을 달랬다.

남편은 혹시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며

내일 다시 자세한 사항을 전화로 문의해보라고 했다.

저녁을 먹고 신문을 보고 있는데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오는 소리가 났다.

‘00 00 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기회에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떨어진 것이 확실하다. 후련하기도 하고 많이 서운했다.


잠시 후, 집으로 전화가 온다. 000이었다. 그녀는 나와 나이가 같은 동갑이다.

그날 우리는 잠시나마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내 연락처를 알려줬더니

전화를 해온 것이다. 전화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니 그간의 일이

형식적인 절차였다는 느낌이 확실하고도 강하게 전달되어 왔다.


‘어쩐지... 그래. 젊은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우리 또래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 나이 제한을 두지 않았던 건 일선업무(창구)가 아닌

후선업무라고 생각했고, 경험 많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을 뿐이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구나!

국책 00 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을 거야.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그들의 계획에 휩쓸리게 된 것이었고...'


‘맞아.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그날 면접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다른 이들의

서류를 넘기면서 내 서류의 한 귀퉁이를 접어 두었고, 전화가 왔던

그녀도 나와 똑같은 그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이었어.

나는 그 일이 계속 머리에 떠올라 마음에 두지 않으려 했지만,

그것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마음에 걸려 찜찜했었지.  

내 면접번호가 끝 번호였던지라 표시를 해두기 위해

그런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우선 나이순으로 잘라버렸던 거야.


이미 경력자로 서류전형에서 뽑았다면 별 다른 이상이 없을 시엔

모두 합격시켜줘야 되는 거 아닌가?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예

서류심사에 나이 제한을 적어두던가? 그랬다면 지원조차 하지 않았겠지.

나이가 들었다고 이렇게 시도해보기도 전에 마음에 상처를 줘도 되는 건지...’


전화를 했던 그녀는 얼마 전에 타 00 에서 계약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동안의 신체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될 리는 없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확실해졌다. 마음에 두지 않으려 했지만 정말 속이 상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주 0 요일.

나는 0000 을 그만 둔지 근 15년 만에 다시 00 기관에 취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부푼 꿈을 안고 0000 의 본점으로 면접시험을 보러갔다.

한 달 전에 인터넷으로 넣어둔 서류심사에 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면접시험과 신체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내가 이전에 근무하던

같은 0000 은 아니었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합격하게 되면 집과 가까운 곳으로 발령이 난다고 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나는 무척이나 설렜고,

계약직이라 그다지 많은 급여는 아니라고 했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희망찬 설계를 꿈꾸고 있었다.

그랬는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여성들은 결혼과 육아로 인해 직장생활을 오래 할 수가 없는 현실에

살고 있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길 무렵이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은 많지가 않다. 남성들도 40대 중반 무렵이면

직장에서 밀려나는 추세에 중년 여성이 어디 일할 자리나 있겠는가?

어쩌다 일감이 있는 곳은 보험 영업을 비롯해서 대부분이

영업 판매직이거나 주방 보조일 같은 허드레 일 등이다.

또한 다단계 사업 망으로 운영되는 곳인 경우가 많다.


일의 누추함을 따지고, 가리는 것이 아니라 주방보조 일 같은 경우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사일과 병행해서

일하기가 매우 힘들고 곤란하다. 또한 자칫 다단계 영업망에 빠져들면

경제적으로 큰 손실과 더불어 그들의 사기행각에 말려들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정말 모처럼 만의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게 아닌가 보다.


면접비로 빳빳한 지폐를 담아 봉투에 넣어 둔 걸 받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던지... 그런 배려까지 해준 00 시스템에 매우 신선함을 느꼈다.

그랬는데... 그것마저 의례적이고 형식적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더 씁쓸하기만 한 것이다.


내 나이 마흔 중반에 금융 기관의 재취업 도전기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리고 말았다. 며칠동안 붕 떠올랐던 설레던 기억.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었는데...

이 나이에 받은 상처가 언제 아물는지... 그것 또한 걱정이다.

아니, 나 정말 돈 벌어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다.

 

(글/ 인샬라-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