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부처님 오신 날에

안젤라-정원 2006. 5. 6. 00:32

 

- 부처님 오신 날에-

 

어린이날과 석가 탄신일이 겹친 오늘은 비가 올 듯 말듯 날씨가 흐리다.

어린이날이 겹쳐서인지 지난 주 일요일에 절에서는 연등행렬을 하기도 했다.

나로선 5월 5일이 몇 해 전,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은 날이기도 하나

오늘만큼은 부처님 오신 날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지난주에 예기치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강아지의 원혼을

달래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고 싶었다.


아침을 먹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싶어 목욕을 하고,

인근의 산에 올랐다. 남편은 아래층 아저씨와 함께

주말농장으로 향했고, 나는 아이와 함께 절에 가고 싶었지만,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 시합이 있다 한다.

할 수 없이 혼자 배낭을 메고 절을 향해 올라갔다.

간만의 발걸음인지라 몸이 둔해서인지 산에 오르자마자

숨이 차고, 이마 위로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약수터에서 물 한잔을 마시고, 숲 속으로 난 사이 길의 흙을 밟고 올라갔다.

산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절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서있는

줄이 보였다. 절 입구까지 차가 다닐 수 있게끔 도로 포장이 되어 있는지라

그쪽 길을 택하기 보다는 흙을 밟는 길을 택해 올라갔다. 이전보다 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아예 돌밭이라 칭할 만큼 발길에 돌무더기가 채인다.

그래도 부드러운 흙길을 밟고 오르는 길이 참 좋은 것 같다.

쭉쭉 뻗어 오른 푸르른 나뭇가지들이 계절의 여왕 5월의 날씨를

더 한층 맵시 있게 새파란 모습으로 반기는 듯 하다.

이따금씩 새들의 울음소리가 산속의 정적을 깬다.


약수터 가까이 있는 절에 다다르니 절 마당 앞에 사람들이

점심 공양을 하기 위해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예전보다 절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듯싶다.

2년 전, 이곳에서 난생처음 초파일에 연등을 켰었다.

사람들이 워낙에 많아 간신히 그 틈을 비집고, 등을 켜고,

약수터 앞의 등에 매달았고, 점심 공양을 하기 위해

장시간 기다린 경험이 있다. 밥을 수시로 새로 해서

공양을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었다.

 

얼기설기 찢어놓은 상추 몇 잎과 무채, 시어터진 김칫국물,

아주 적은 량의 고추장만이 전부였던 절밥은 그야말로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고, 너무 성의가 없어 보였다.

절에서 주는 밥은 버리면 안 되는지라 억지로 입 안으로

밀어 넣고, 쓴 웃음을 삼킨 기억이 난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초파일엔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로 간 것일까?

여기저기 빈 등들이 많았다. 그렇게 성의 없이 주는 공양이라면

차라리 주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던 절이다.

사람들의 입소문이 확실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절밥을 먹고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만에 찬

중얼거리는 소리들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절 앞을 지나 흙길을 밟고 오른쪽 길로 나가면 평지가 나온다.

다른 절로 가는 곳이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다 등산객까지 더불어

등산로 위쪽으로까지 길게 줄이 늘어서있다.

절 마당에는 돗자리가 깔려있고, 연등을 접수하고 있다.

스님의 설법이 시작된 듯 하다. 귀로 들으면서 점심 공양 줄에 합류했다.


잠시 후, 뒷사람에게 자리를 부탁하고는 연등 접수처로 갔다.

주소와 식구들의 이름과 나이를 적고, 추가해서 소원성취를

적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접수 받는 분이 시원스런 필체로

받아 적어 주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성의껏 연등을 켜는 것이 아니라

절에서 정해준 금액에 따라 一日 등, 일주일 등, 일년 연등으로

차이를 둔다는 점이었다. 순간 기분이 묘했으나 기왕에 등을 켜려고

했으니 좋은 마음으로 해야 되겠다 싶어 초파일 하루 등을 접수했다.


분홍빛 진달래꽃이 만개한 꽃나무 앞에 환한 모습의 진보랏빛

연등에 불자님이 적어 준 명단을 걸고 두 손 모아 합장을 올렸다.

절에 다니는 불자도 아니고, 불교에 관해 자세히 아는 것도 없으나

선한 것을 추구하고, 남을 위해 베풀고, 화평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종교라는 생각에서 종교란 다 일맥상통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기다렸던 줄에서 드디어 내 차례가 와서 점심공양을 받았다.

할머님 두 분이 앉아 계시는 곳에 합석해서 절밥을 먹는데

그 중 한 할머님이 말을 걸어온다. ' 어떻게 혼자 왔어요?''네.'

이런 저런 얘기를 건네다 보니 강아지 얘기가 나왔다.

이런 얘기는 안됐지만, 강아지가 우리 집의 우환을 대신 짊어지고

세상을 떠난 거라 했다. 강아지가 죽지 않았다면 사람이 크게

다치던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죽게 되었을 거라 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대신에 다시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면

손 없는 날에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곁들인다.

알고 보니 그 할머님은 예전에 절을 운영했던 분이라 한다.

가슴이 섬뜩했다.


지난 시간을 찬찬히 돌이켜보니 그간에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남편과의 사이도 극에 달할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고, 아이와의

사이에도 늘 벽이 있었으며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아

진퇴양난의 길에서 수없이 많은 갈등과 고민이 축적 되어 있었다.

강아지가 있어 그간에 많은 위로가 되긴 했어도 집안 분위기는

늘 화와 짜증과 걱정과 불안감으로 뒤덮인 날의 악순환이었다.

온 식구의 사랑을 받던 강아지 두리가 그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간 우리 식구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고 간 것이 실감났다. 그러고 보니 강아지가 죽기 전날에도

그랬지만, 죽은 동생이 자주 꿈에 나타나 내 손을 잡고 함께

가자고 해서 마구 실랑이 하던 꿈이 생각났다. 그럴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달력에다 꿈꾼 상황을 적어두기까지 했던 일들.


절밥을 먹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제야 마음이

평화롭고 한결 평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말농장에서 돌아오는 남편과 합류해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엔 주말농장에서 남편이 열무와 상추 솎아온 것을 가지고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샐러드에도 찍어 먹고, 양념 고추장에

새싹 비빔밥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직접 씨를 뿌려 가꿔

먹은 야채라 그런지 사먹는 것보다 훨씬 더 맛나게 먹은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여유롭고, 풍요로운 느낌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렸으면 좋겠다.

잘 될거야. 잘 되겠지?  (2006. 5. 5. 금. 초파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