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월드컵 시기에 맞은 생일

안젤라-정원 2006. 6. 14. 07:19

- 월드컵 시기에 맞은 생일-


2002년 월드컵 축구로 전 세계가 광풍 같던 열기로 치닫던 시기.

당시 우리나라는 기적 같은 꿈의 신화를 이루어 온통 축구에

대한 열광과 흥분,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16강을 넘어 8강에 진출하고, 드디어 4강까지 올라가

한국과 터키와의 결전의 승부가 있던 날이 바로 내 생일이었다.


그날, 아이는 친구들과 인근의 시청으로 응원을 나가고,

남편 또한 친구들과 모여 축구 응원을 가서 늦을 것 같다고 했다.

마누라 생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런 건 관심도 없었다.

할 수없이 생일을 혼자 보내게 된 나는 낮에 만난 지인 둘과 함께

우리 집에서 함께 터키와의 축구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부랴부랴 식사를 준비해 저녁밥을 먹으려는 순간,

한국이 골을 내주고, 경기가 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입맛도 없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기분이 가라앉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던 지인들도 주부인지라 축구 경기가

이긴다면 몰라도 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식구들에게 핀잔을 들을까봐서인지 얼른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녀들이 사다 준 케잌에 불도 붙여보지 못한 채, 혼자

거실에 남은 케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기분이 더 우울해졌다.

밤늦게 기운이 빠진 채 들어온 아이와 함께 케잌에 불을 붙여

생일 축하를 받으며 조촐하게 생일을 보냈다.

남편은 술에 만취된 채, 밤늦게 들어왔다. 결혼 후 단 한 번도

식구들과 내 생일에 케잌 한번을 잘라보지 못한 채...


4년이 지난 2006년도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가 시작되었다.

2002년도의 기적 같은 신화를 다시 기대하는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기가 더욱 더 뜨거워짐을 느낀다.

어디를 가도 붉은 색 물결로 가득 차고, TV에서는

축구에 대한 방송으로만 가득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축구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는 듯 하다.


오늘은 첫 경기로 한국과 토코와의 결전이 있는 날이다.

축구가 시작되는 시간이 밤 10시부터라고 하니

축구 경기를 지켜보는 동안 내 생일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공교롭게도 월드컵 시기에 맞은 이번 생일 역시 이렇게

축구에 대한 열기에 묻혀 그다지 식구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흐지부지하게 지나쳐 버릴 것만 같다.

그나마 토고와의 결전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기분이 업(UP)되어

조금이나마 기분 좋은 국물? (선물) 이라도 기대해 볼 텐데...ㅠㅠ


그나저나 토코와의 경기가 꼭 이겼으면 좋겠다.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간절한 기도의 힘이 전달되어서

그간에 쌓은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축구 하나로 전 세계가 들썩이며 강한 응집력으로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것을 느끼니 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일본과 호주와의 경기에서 볼 수 있듯이 후반전 일 분여를

남겨놓고도 터질 수 있는 역전의 골.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반전의 묘미가 주는 축구에 대한 즐거움은 가히 환상적이다.

그래서 남, 여, 노소를 불구하고, 축구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축구관람으로 인해 새벽까지 졸린 눈을 부비며 다음 날

비몽사몽간에 하루 종일을 병든 닭 마냥 지낸다 해도

한국 축구가 이겨준다면 올 한해는 기분 좋은 흥분으로

넉넉한 마음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월드컵 축구로 인해 덤으로 기분 좋은 생일이 되기를 기대하며...

(2006. 6. 13. 화)


한국과 토코와의 경기가 한국시간으로 밤 10시 이후부터 진행되었다.

전반전에는 한국 선수들의 몸 풀기가 더디 진행됨을 느꼈다.

움직임이 둔하고, 골을 가지고, 이리저리 패스만을 하는 둥

활발한 공격성이 보이지 않아 보는 이의 가슴을 애타게 했다.

개인기가 훌륭했던 토고 선수들은 발 빠른 움직임이 돋보였고,

드디어 한 골을 먼저 선취함으로 우리 골문을 점령했다.

전반전에는 확실히 토고 선수들의 우세가 엿보였다.


아쉬운 전반전 경기가 끝나고, 후반전 경기에는

안정환 선수의 투입으로 인한 활기찬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반전의 부진을 딛으려는 힘찬 노력이 엿보였다.

자주 한국 선수들의 발을 걸었던 토고 선수의 반칙으로 인해

퇴장이 선언되었다.


이어서 터진 이천수 선수의 멋진 프리킥 선전으로 인해

공격이 가세되고, 동점 골이 터져 나왔다. 전반전의 약세를

딛고, 발 빠른 움직임으로 선수들의 몸이 풀리고 있음을 느끼는 사이

특히나 안정환 선수의 활약이 돋보였다. 드디어 안정환 선수의

금쪽같은 역전 골이 터지자 모두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열어 둔 아파트 창문 사이로 폭죽과 함께

환호의 휘파람이 울려 퍼졌다. ' 대한민국! 짝짝짝!'

집 안, 밖에서의 기쁨의 함성들이 밤하늘의 공기 속으로

힘차게 퍼져나가는 것이 들렸다.


2대 1의 역전 골. 승리는 우리 것이 되었다.

앞으로의 기대감을 더 한층 느끼게 해줄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생일까지 겹쳐서...

(2006. 6. 14.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