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지난 여름날의 단상

안젤라-정원 2006. 8. 31. 06:55

- 지난 여름날의 단상-



아이를 낳던 달이라 그럴까? 해마다 여름 보내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이제 여름만 다가오면 겁이 더럭 날 정도다. 어찌 이 길고 무더운 계절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는지 두렵기만 하다. 올해는 여느 해와 달리 햇빛

한줌 없는 지루한 장마가 한 달 내내 계속되더니 태풍 또한 매섭게 몰아쳤고,

찌는 듯한 폭염의 날씨가 사람 피를 말리듯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내일이면 8월도 끝나가고 초가을로 접어드는 9월이건만,

아직도 여전한 더위가 여름의 끝물 앞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아이를 낳던 그 해 여름도 무척이나 더웠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 날씨가 지속된다 해도 체질적으로 몸이 냉한 편이고

찬바람을 싫어해서인지 생전가야 집에서 선풍기조차도 틀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산달이 다가온 임신부의 배와 함께 저절로 온몸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견뎌낼 재주가 없었던 나는 선풍기를 끌어안다 시피하며

8월의 막바지 더위와 종일 싸우며 살았다.



사람들이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의례히 찾는다는 금융기관에 근무했던 나는

냉난방 시설이 최고로 잘 되어있는 곳에서 근무해서인지 그다지 큰 불편함 없이

여름날을 보내곤 했다. 오히려 난방병? 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콧물 알레르기와

함께 약간의 추위마저 느꼈을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임신을 하면서 6개월

휴직에 들어가고 집에서 여름을 맞이하던 그 해는 사방이 콱 막힌 답답한

더위와의 전쟁이었다. 원래 아이를 낳을 예정일은 9월 10일경이었으나

8월 29일에 앞당겨 태어났으니 여름 한철을 온전히 다 보내고 나서야

산후 회복기로 접어든 셈이 된 것이다.

그러니 지내기가 얼마나 곤혹스러웠겠는가?



암튼, 당시 신혼 초, 우리가 살던 곳은 송내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주위엔 여기저기 솟은 공장의 굴뚝에서 밤낮으로 매연이 쏟아져 나오고,

그로 인해 창문을 열어둘 수가 없었다. 문을 열어두는 날엔 영락없이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씌우기를 염두에 둬야 했었다. 그나마 안방 쪽은

좀 나은 편에 속해 빨래는 늘 안방 실내에서 말려야했다.

안방을 통해서 나가는 통로나 베란다조차 있지 않은 곳이었으니...

실상 아파트라고 해봤자 단 두 동 뿐인 5층짜리 저층 아파트의 3층에

거주했던 우리는 연탄을 갈 경우에만 환기를 위해 잠시 창문을 열어두는

정도였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지하실에 있는 창고에서 연탄을 가져다

연탄 보일러실 한쪽 구석에 나무판자를 얹고 연탄을 쌓아두었다.

그것도 많이 가져다 놓을 수 없는 공간이었고, 검은 연탄 가루가

날릴까봐 늘 걱정이었다.


겨울엔 창문을 닫고 살아서인지 그다지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더운

여름 지내기는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이웃 사람들은

현관문을 열어두고 여름을 보내는 집들도 많았다. 아파트마다 수시로

들락거리는 장사꾼들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인지 나는 덥다고 함부로

현관문을 열어 두지 않았다.


임신을 하게 되면 체온이 상승하고, 그로 인해 더 덥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워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기억에 남는다. 하루 온종일 선풍기 앞에서

" 아휴. 더워. 왜 이리 덥지? "

연발하며 머리에 질끈 수건을 동여맨 채, 이마로,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산후 조리를 하는 기간에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수시로 땀을 닦아내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얼굴에 남아 있는

온갖 잡티와 기미가 말끔히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웬만큼 더워도 여간해서 땀이 나지 않는 체질이었던 나는 땀이라는 것이

몸 안의 노폐물을 밖으로 배설시켜 불순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더위와 함께 임신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날이 더워도 방바닥만큼은 차가운 걸 아주 질색하는 내가 자주

찾는 곳이 있다면 찜질방이다. 찜질방에 가면 흠뻑 땀을 뺄 수 있고, 마음껏

땀과 씨름하고 나오면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상쾌함을 느낄 수 있어 참 좋다.

올 여름엔 찜질방에 조차 가보지 못하고 지루하고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오히려 집이 완전 찜질방 저리 가라 수준이었으니까.

따로 찜질방을 찾을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더웠다.

그나마 작년에 아이 방에 설치한 에어컨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 지긋지긋하고도 긴 여름을 견뎠는지

상상조차 하기 싫어진다.


오늘은 모처럼만에 찜질방을 찾아 휴식을 취했다.

옛 어른들 말씀처럼 산달엔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고 하더니

정말이지 내가 꼭 그 짝이었다. 게다가 오래전 유산을 했던 달도

이맘쯤이었고, 장 간막에 계란만한 물혹이 있어 수술을 했던 때도

한여름이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여름이 다가오면 걱정부터 앞선다.

올해도 무사히 넘길 수 있으려나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잘 지났다.

한낮엔 덥지만, 그래도 아침, 저녁으론 제법 선선해졌다.

심신을 차분히 되돌아볼 수 있는 계절, 가을이 오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쓸쓸하고 고독한 계절이긴 하지만, 나는 가을이 다가옴이 반가울 따름이다.


여름 내내 땀을 하도 많이 흘렸더니 기력이 쇠진했나?

심신이 피곤하고, 별 다른 이유 없이 몸과 마음이 아프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말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는 법이다.

타인의 고통을 먼저 헤아리기 보다는 내 자신의 처한 고통과 아픔이

더없이 크게 느껴지는 법인가 보다. 피치 못할 상황으로 인해

감정을 억누르고 살다보니 삶의 에너지가 어디론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다.

선선한 가을 날씨가 빠져나간 나의 삶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

보충을 해줄 것이라 믿고 싶다. 가을엔 정말 자유롭고 싶다.

(2006. 8. 30. 수)


(글쓴이: 인샬라-신의 뜻대로, 정원-필명, 실명- 김영순)